글쓰기

희망을 버려. 그리고 힘내!

mtepg924 2025. 4. 22. 21:45

<사이보그지만 괜찮아> 영화를 보았다.  일단 되게 이상한 영화다. 박찬욱 특유의 난해하고 기괴한 미술같은 영화다. 하지만 묘하게 따뜻한 메시지가 담겨있다. 공감되는 이야기와 메시지여서 오늘 이 영화에 대한 리뷰로 글을 써보고자 한다.

 

영화의 배경은 정신과 폐쇄병동이다. 하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동화같다. 정신 질환 환자들의 시점에서 영화가 진행되는데 슬프게 묘사되기보다는 엉뚱한 판타지처럼 묘사된다.

 

주요 내용은 영군이와 일순이의 이야기이다. 영군이는 스스로를 사이보그라고 생각하는 여자주인공이고, 일순이는 다른 사람들의 특징을 훔칠 수 있다고 믿는 남자주인공이다. 영화 후반부로 가면 이 둘의 서사가 풀리는데, 영군이는 어머니의 사랑 없는 간섭에서 자랐고, 일순이는 어머니에게 버림을 받았다. 둘은 특징적으로나, 배경적으로나 사회에서 소외된 인물들이다. 영화는 소외된 인물들이 만나 서로를 위로하고, 서로의 세상이 합쳐지는 과정을 그렸다.

 

나도 세상에서 소외된 느낌을 받았던 적이 있다. 아무도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다고 느꼈던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이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버려진 느낌을 받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홀로 있었을 때 나에게 다가와 준 사람은 ‘정상인’은 아니었다. 한국에서 표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만의 개성과 주관이 뚜렷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마치 일순이처럼. 그 경험으로 나의 사회적 동물로서의 기능이 다시 기능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다시 사람을 믿을 수 있고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때 그 사람이 다가와줬을 때 마음이 더 열리고 믿음이 갔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어서인 것 같다. 나와 비슷한 상처가 있고, 비슷하게 이상해서 비슷한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동정이나 가짜 반응이 아니라 진정한 호기심과 관심을 보이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도 그의 세상을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년이 지난 지금, 그 때의 내 예측은 틀리지 않았다. 여전히 이 이상한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며 안정을 느끼고 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이상하게 비슷한 사람을 만난 건 내 인생의 역대 행운이다.

 

이 영화의 주제의식은 다음 대사를 통해 드러난다.

희망을 버려. 그리고 힘내!

 

언뜻보면 위로인가 싶지만, 깊이 있고 따뜻한 마음이 담긴 대사라고 생각한다. 상황이 절망적으로 힘든 사람한테는 희망이라는 말이 와닿지 않는다. 절망적인 사람은 기본적으로 무기력하다. 그런 사람한테는 꿈을 심어주기 보다는, 그저 존재하는 것 자체만 힘을 내달라고 하는 것이 훨씬 깊이있는 위로가 된다.

 

간만에 명대사를 찾아서 기쁘다. 살다가 종종 떠올려야겠다. “희망을 버려. 그리고 힘내!”

 

'글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중학생 베프와의 추억  (0) 2025.04.10
우리 모두가 성장통을 겪는다  (0) 2025.04.03